영원한 봉제인, 한인 봉제 산업의 성장 과정을 돌아보다.

2018년을 맞이하면서 미얀마 봉제 산업의 변화의 시기에 많은 활약을 한 김순철 전 협회장을 만나 미얀마 봉제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997 미얀마 진출

2000 에야와디 봉제 공장 설립

2011 제11대 미얀마 한인 봉제 협회장 역임

2012 제12대 미얀마 한인 봉제 협회장 역임

2014 풀문 아세아 설립

2018 제16대 미얀마 한인 봉제 협회 고문

 

미얀마 오게 된 배경

1997년 11월 방글라데시에 준아실업 퇴사 후 미얀마에서 공장을 운영을 하고 있는 지인의 권유로 한달간 방문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미얀마 진출을 결정하게 되었다. 이후 Myanmar Textile Industry 초청장을 받아 지인이 임대한 Government Factory NO2. 관리 책임자로 근무를 시작하였다. 2년 6개월간 근무 후 방글라데시에 있던 준아실업 미얀마 진출로 공장 설립에 합류를 하였다. 2000년 4월 준아실업 공장 완공을 마치고 2000년 4월 본인의 공장인 에야와디 봉제 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당시 미얀마 환경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공장은 많지 않았지만 상당히 활기차게 운영이 되고 있었다. 공장 설립 초창기에는 미국, 유럽 오더를 병행하고 있어 호황이었다. 에야와디 미얀마는 주로 스페인 오더를 받아 진행을 하였다. 설립초기부터 품질관리와 납기일 준수가 잘되어 흑자 운영을 하였다. 이후 흘라잉따야 산업단지로 확장 이전을 하면서 400명에서 800명 노동자 규모의 공장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였다.

미국 경제 제재 시작

2003년부터 미얀마에 대한 미국 경제 제재가 시작이 시작되고 유럽까지 경제 제재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미얀마 봉제 산업은 300여개의 봉제 공장에 85,000여명의 노동자들이 근무를 하였다. 순식간에 봉제 공장은 폐업과 철수 등으로 150여개로 줄어 들었다. 에야와디 미얀마도 1차 인원 감축으로 절반 인원 축소를 하였다. 최소 인원으로 버티다가 결국 공장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다. 미얀마 봉제 공장들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울음이 그칠 날이 없었고 본인도 정들었던 노동자들과 이별을 하며 가슴이 아팠다. 당시 공장 임대료가 3,500달러였는데 1,000달러로 조정을 하고 대책을 찾고 있었다. 운영 중단 한달여쯤 지나고 공장에서 근무했던 관리자와 매니저들이 찾아왔다. 모두 구직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래서 원단 재고를 활용해서 내수용 제품을 만들어서 용돈이라도 챙겨 갈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퇴사했던 노동자들이 다시 모이게 되어 운영이 되었다. 2달정도 그렇게 운영을 하면서 대책을 찾던 중 영국 오더를 생산하는 대만 봉제 공장 대표에게 부탁을 하였다. 공임도 너무 싸고 현지 업체만 하청을 주고 있었다. 공임을 떠나 하청을 받는 것이 중요하기에 현지 공장을 통해 하청을 받아 진행을 하였다. 그렇게 300여명의 노동자들과 근무를 하면서 힘든 시기를 버텨 나갔다.

다시 살아나는 봉제업

어려운 시절을 버텨 나가던 중 정치적인 변화로 미얀마로 한국 오더들이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이직 하우스, 이랜드 등이 본격적인 진출을 하면서 현지 업체 오더에서 한국 업체 오더로 바꾸어 나갔다. 이후 1~2년후부터 일본 오더도 중국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750~800여명의 노동자가 근무를 했지만 운영이 쉽지는 않았다. 한국, 일본 오더는 품질과 생산과정이 까다로워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쉽게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공장의 열악한 환경도 생산성 저하의 원인이라고 판단이 되어 이전 계획을 세웠다. 2010년 하반기 미얀마 정부가 미얀마 개방을 시작하면서 외국인 투자법 개정이 되었다. 개정 내용에는 민간 토지와 건물에 대한 외국인 투자 허가가 되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많은 한인 공장들이 현지인 명의로 공장을 운영을 했는데 개정에 발맞춰 외국인 투자 공장으로 정신 전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가지 상황이 좋아지면서 2011년 쉐삐따 산업단지에 있는 신축 공장으로 확장 이전을 하였다.

미얀마 한인 봉제 협회장

이 시기에 미얀마 한인 봉제 협회(KOGAM) 한광열 전 회장(대우 법인장)에 이어 미얀마 한인 봉제 협회장을 맡게 되었다. 2011년은 한국 언론을 통해 미얀마가 기회의 나라로 조명을 받으며 많은 바이어, 투자자, 개인사업가 등이 미얀마 방문을 줄지어 왔다. 문제는 방문자가 너무 많아 매일 KOGAM 방문자 미팅 약속, 협회 업무 등으로 하루 일정의 70%를 할애했다. 이 때가 본인의 봉제 업계 종사한 인생 중 가장 바쁜 시기였던 거 같다. 한편으로 봉제인으로서 봉제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기여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어 보람도 있었다. 이러한 일을 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선배님들 그리고 봉제인들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

하지만 너무 많은 업무에 지쳤다고 할까? 잠시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운영하던 공장을 봉제 대기업에 양도를 하게 되었다. 6개월간 양도 기간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그렇게 몸과 마음을 회복한 후 잠시 봉제 공장 건설업을 경험하고 게스트하우스와 식당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4년 2월 가족들과 함께 풀문 게스트하우스& 식당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숙박하는 손님들도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식당도 맛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젊어지는 KOGAM, 함께 하는 KOGAM

본인이 미얀마 한인 봉제 협회 회장직을 내려 놓고 14대 15대 서원호 전 봉제 회장이 많은 노력을 했다. 내부적으로 회원사간의 탄탄한 결집력을 만들었고 외부적으로 외부 단체와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또한 [실과바늘]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봉제 발전과 봉제인의 화합을 이루어 내는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최근에는 대표적인 미얀마 한인 비즈니스 매거진으로 자리 매김하여 KOGAM의 위상도 한단계 올렸다고 본다. 16대 조현오 봉제 회장도 그 뒤를 이어 KOGAM 회장단이 젊어 졌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대외적으로 미얀마, 중국, 일본 봉제 협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16대 회장단에서 적극적으로 전임 회장들과 원로들과 함께 교류의 장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젊은 회장단들이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원로들과 함께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최저 임금 등으로 힘든 시기이자만 KOGAM 회원사들이 단합하여 잘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을 한다.

최저임금

미얀마 최저임금 3,600짯에서 4,800짯으로 33% 인상할 예정이다. 회사 경영에서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5년 처음 최저 임금이 확정이 되면서 환율 상승으로 어느정도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었다. 2018년에도 환율이 뒷받침 해주 길 기대해본다. 현재 상태에서 최저 임금 인상이 된다면 현지 업체뿐만 아니라 한인 업체도 운영에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측에서는 물가 상승의 이유로 2년만에 33%의 인상이 적절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미얀마의 대외 경쟁력은 풍부하고 저렴한 인건비라는 점을 인지했으면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얀마 최저 임금이 인상 되는 건 인건비 인상에 따른 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다. 미얀마 노동자가 임금에 대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도 원인이다. 동료가 임금이 조금만 높아도 자존심이 상해 퇴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업무 능력에 있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기는 7벌 생산하는 동안 동료가 10벌을 생산하는 업무 능력 차이가 있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국 봉제 산업이 활성화 되고 있었을 때 숙련공의 자부심을 가지고 동료의 업무 능력에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미얀마 현지 노동자들도 이런 자존심이 생겨나길 바란다.

다른 면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원인을 보자면 1990년 후반에서 2000년 초반을 제외하고 미얀마 봉제 산업 생산성은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 미얀마 개방이후 주로 한국, 일본 오더 비율이 많은 부분이다. 대부분 오더의 특징이 수량은 작으면서 작업 공정이 복잡하다. 경제 제재 등으로 새로운 설비 투자가 안되는 부분도 있다. 관리자에 대한 숙련도 개발도 취약하여 숙련도 향상이 안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행이 이 부분들은 많은 한인 봉제 업체들이 인지를 하고 생산성 향상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유럽, 미국 오더는 임가공비가 저렴하지만 단순한 작업이 많다. 노동자들의 숙련도를 올리는 부분에 있어서는 당연하겠지만 앞으로 유럽, 미국 오더를 진행할 수 있도록 시설 투자도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브랜드 오더가 소셜 컴플라이언스 기준을 통한 오딧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경쟁력 있는 회사가 본격적으로 투자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트렌드를 만들어 나가면 중소 한인 봉제 공장에서도 하청을 받기 위해선 필요한 투자라고 인식을 하고 같이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준비를 해 나간다면 미얀마 봉제 산업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최근 중국 봉제 업체들이 많이 진출을 하고 있어 위협을 받는다고 하지만 중,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진행을 한다면 가장 오랫동안 미얀마 봉제 산업을 이끌어 온 한인 봉제 업체들이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마무리

잠시 봉제 산업을 떠나 있었지만 30여년간 봉제 산업에 종사를 해왔기 때문에 머리속에는 항상 봉제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봉제 산업이 한국, 미얀마, 미국의 경제, 정치 상황에 따라 다변화를 하다 보니 항상 주시하고 있다. 2018년부터는 적극적으로 미얀마 한인 봉제 협회를 통해서 고문의 역할을 하면서 봉제 관련 사업에 복귀를 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 그런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하면서 더욱 성장해 나가는 KOGAM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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