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쇼파르] 미얀마 샨주북부에서 온라인 사기를 저지른 Bai Suocheng 주요 조직원 5명이 중국 남부 지역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Xinhua 보도가 전했다.
해당 인물들은 사기, 살인, 의도적인 피해 유발 등 각종 강력 범죄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었다.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Bai Suocheng, Bai Yingcang, Wei Huairen, Liu Jiguang, Liu Zhengmao and Xu Laofa 5명이며, Li Fuxiao와 Li Ji Tiel은 2년간 집행유예가 붙은 사형을 받았다.
Guangdong성 Shenzhen 인민법원 판결에 따르면 이들 범죄 행위로 인해 중국인 6명이 사망했고,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여러 명이 큰 피해를 입었다.
추가로 조직에 가담한 다른 범죄자들은 최대 20년에서 최소 3년까지의 징역형, 벌금형, 재산 압류 및 추방 등 다양한 처벌을 받았다.
이들은 미얀마 Kokang 지역에 41개의 건물을 지어 온라인 사기, 불법 도박장 운영, 고의적 살인, 성매매, 강제 노동, 인신매매 등 광범위한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형 선고를 받은 인물 중 한 명은 타 조직원들과 합심해 마약인 메스암페타민을 약 11톤가량 거래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법원은 이 조직이 불법 사기, 도박 등으로 얻은 수익이 약 29억 위안(약 4억 달러)에 달한다고 판시하였다.
미얀마 코캉 (Kokang) 지역 역사
코캉(Kokang)은 미얀마 샨주 북동부에 위치한 약 1,895km²의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살윈강이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중국 윈난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수도는 라우카이(Laukkai) 타운십이며,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역사적 배경과 중국과의 연계
코캉은 역사적으로 수 세기 동안 중국의 일부였다.
1739년 양헌재(楊獻才, Yang Xiancai)가 흥달호(興達戶, Xingdahu)라는 토사(土司) 영지를 건립했으며, 그의 후손들이 이를 코캉 왕국으로 개칭했다.
1840년 윈난 총독은 양씨 가문에 청나라 속국의 세습 권리를 부여했다.
1885년 영국이 버마를 정복한 후, 코캉은 1894년 중영 국경 협약에 따라 처음에는 중국에 배정되었으나, 1897년 2월 보충 협정을 통해 영국령 버마로 편입되었습니다.
민족 구성 및 문화적 정체성
코캉 지역은 주로 중국계 민족인 코캉족(윈난계 중국인)이 거주하며, 인구는 약 16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윈난성 방언의 중국어를 사용하고 한자를 쓰며, 중국 문화를 유지하고 있어, MNDAA가 1027 작전을 통해 일부 지역을 점령한 이후, 중국어로 공문을 발표하면서 미얀마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로부터 완전한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중국 정부로부터도 공식적인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MNDAA 설립 배경 및 역사
최근, 체포된 바이수청은 원래 MNDAA 소속으로 있다가 반란을 일으키고 떨어져 나와 현재 Kokang 범죄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MNDAA(Myanmar National Democratic Alliance Army)는 1989년 3월 12일 공산당 버마(CPB)에서 이탈하여 설립된 소수민족무장단체로 알려져 있다.
코캉 지역의 공산당 지도자였던 펑자성(Pheung Kya-shin, 彭家聲)이 공산주의 정부에 불만을 품고 동생 펑자푸(Peng Jiafu)와 함께 분리하여 새로운 조직 MNDAA를 설립하였다.
펑자성은 2022년 2월 16일 91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펑더런(Peng Deren/Peng Daxun, 彭大勛)이 2022년부터 지휘권 승계하여 운영되고 있다.
주요 활동 및 역사적 사건
MNDAA는 1989년 CPB에서 분리된 후 미얀마 정부와 최초로 휴전협정을 체결한 조직이 되었다.
휴전 후 미얀마 정부는 MNDAA가 통제하는 지역을 “샨주 제1특별구역”(Shan State Special Region 1)으로 지정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코캉 지역은 아편 재배와 헤로인 정제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2009년 코캉 사건
2009년 8월, 미얀마 국방부는 MNDAA에게 군부 통제 하의 국경수비대(Border Guard Force)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으나 MNDAA가 이를 거부하자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 충돌로 MNDAA는 코캉 지역의 통제권을 상실했고, 약 3만 명의 난민이 중국 윈난성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펑자성의 전 부사령관이었던 바이수청(Bai Suocheng, 白所成)은 미얀마 국방부와 협력하여 코캉 국경수비대(Kokang BGF)를 설립하고 지역을 장악하였다.
이후 이 지역은 코캉 자치구역(Kokang Self-Administered Zone)으로 재명명되었습니다.
2015년 코캉 공세 및 복귀 시도
2015년 2월, 펑자성은 MNDAA를 재편성하여 코캉 탈환을 시도했으나 미얀마 군부에 의해 격퇴당했다.
이 충돌로 약 10만 명의 난민이 다시 중국으로 피신했다.
1027작전으로 드디어 코캉 탈환
2023년 10월 27일, MNDAA는 타앙민족해방군(TNLA), 아라칸군(AA)과 함께 “삼형제동맹(Three Brotherhood Alliance)”을 결성하고 “1027 작전(Operation 1027)”을 개시했다.
작전 개시 후 불과 2개월여 만에 MNDAA는 250개 이상의 군사 기지와 검문소를 점령했으며, 9개 도시를 장악했다.
2024년 1월 4일, MNDAA는 코캉 자치구역의 수도인 라우카이 타운십을 완전히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결국 철수를 하게 되었다.
코캉 지역의 4대 범죄 가문 중 하나, 바이수청
코캉 지역에는 4대 가문인 바이(Bai), 웨이(Wei), 류(Liu), 밍(Ming)가 지배하고 있었다. 현재 중국 공안에 체포된 바이 가문은 초토화가 되어 가고 있으며, 나머지 가문들도 숨어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펑자성을 몰아낸 후, 바이수청은 코캉 자치구역의 초대 주석이 되었고, 코캉의 4대 가문으로 불리게 되면서 바이수청 코캉 국경수비대 초대 사령관을 지내고, 그의 아들 바이잉창(Bai Yingcang, 白应苍)은 코캉 경제개발국 부국장, 그의 딸 바이잉란(Bai Yinglan/Bai Lan, 白应兰) 신바일리(Xinbaili) 그룹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바이 가문은 코캉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41개의 대규모 범죄 단지를 개발하고 운영했다.
바이 가문은 “코캉 엔터테인먼트 관리위원회”를 설립하여 범죄 활동을 합법화하려 했으며, 다른 범죄 조직으로부터 “보호비”를 징수했다.
자체 민병대를 운영하여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온라인 사기단 노동자를 처형하고 중국 국민을 강제 노동에 동원했다.
코캉의 4대 악녀중 하나, 바이잉란(백란)
바이수청의 둘째 딸 바이잉란은 “자선의 여신”, “사랑의 여신”으로 불리며 청순한 외모와 적극적인 자선 활동으로 코캉의 퍼스트 레이디와 같은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는 외부의 견제로부터 가문의 사업을 보호하고 민심을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바이잉란은 MKKTV 방송국을 통해 가문의 사업과 자신의 자선 활동을 포장했으며, 백승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건설, IT, 무역 등 양지 사업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카지노, 매춘, 사기, 장기 밀매 등의 흑색 산업을 운영했다.
2019년 이후 미얀마 정부가 외국인의 카지노 사업을 허용하면서, 중국 등지에서 단속이 강화된 범죄 조직들이 코캉 지역으로 몰려들었으며, 바이 가문은 이들에게 “샤주판(豬仔판)”, 즉 “돼지 도살판”이라 불리는 로맨스 스캠, 보이스피싱, 온라인 사기 등의 사업 확장을 지원했다.
체포 및 재판
2023년 12월 10일, 중국 정부는 바이수청을 포함한 10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2024년 1월 30일, 미얀마 경찰은 바이수청, 바이잉창, 웨이후아이런(Wei Huairen) 등 6명을 포함한 총 10명의 핵심 인물을 중국으로 송환했다.
2025년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바이 가문에 대한 첫 공판이 진행되었으며, 최근 사형 선고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