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얀스타, 정동진 회장

인도네시아사업체로 충분히 큰 회사였는데 미얀마로 진출하게 된 계기를 알고 싶다.

1988년도 영국 Campari 서울지사에서 인도네시아에 투자한 PT, Campri 지사장으로 처음 진출후 1991년 인도네시아에서 PT. Bintang Busana Jaya 회사를 설립하였고, 1996년 한국에서 Starnesia 회사를 설립하였다. 얼마 후 삼성물산이 100% 투자한 PT. Starnesia 회사를 인수하면서 국내외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 때 인도네시아 내수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Ramses>라는 브랜드를 론칭하였으나 인도네시아에서 민주화 운동으로 정권 붕과와 함께 인건비가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공장운영이 어려워졌고 이에 저임금으로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 다른 나라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베트남과 중국을 중심으로 사업조사를 하였다. 베트남의 경우 현지 근로자의 업무역량은 좋았지만 성품이 좋지 못 한 면이 있었고, 중국은 한 가정 한 자녀 출산으로 장기적으로 볼 때 젊은 인력충원이 힘들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러다 근처의 미얀마를 보게 되었는데 미얀마의 근로자들은 대체적으로 심성이 착해 보였고 좋지 못한 국가 인프라와 금융 서비스는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를 하고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나아질 것이란 예상은 2003년 미국 경제제재가 시작되면서 오히려 더 어려워졌고 2011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정권의 출범으로 서서히 바뀌어지고 있다. 처음에 미얀마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미얀마를 주 사업장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초기 사업 자본금을 현금 600만불로 시작 하였으나 낮은 인건비로 바이어로부터 수주가격이 낮아 저조한 수익률에 경제제재까지 겹쳤다. 미국의 발주가 다 끊겨버리면서 의도하지 않게 미얀마 사업에 집중 할 수 밖에 없게 되어 지금의 <미얀스타>가 있게 되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회사는 아내가 경영을 하면서 공장을 임대해주고 있다.

미얀스타의 차별화된 경영 시스템과 복지 시스템을 알고 싶다.

일반적으로 봉제공장의 더 나은 수익을 위해서는 원, 부자재 구매에서 완제품 생산 및 선적까지 이행 하는 FOB방식으로 오다진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미얀마에서 많은 봉제공장들은 CM(임가공)방식으로 진행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회사 수익도 줄어들고, 근로자들에 대한 복지수준도 줄어든다. <미얀스타>는 신사복이라 임가공비가 조금 더 비싸 다른 공장에 비해 수익이 더 생긴다. 물론 수익이 큰만큼 품질, 생산성 유지를 위해 더 많은 한국인 관리자 고용으로 인한 비용과 기계 투자가 매년 크지만 회사는 근로자에게 복지혜택을 더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건비로 따지면 다른 봉제공장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겠지만 근로자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생필품이나 가전 제품 등으로 급여 외 혜택을 주고 있다. 작게는 치약, 칫솔부터 장기 근로자는(10년이상) 어떤 식으로든 혜택을 많이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노력을 해왔다. 근로 5년차부터 TV, 냉장고를 지급하고 있고, 10년차부터는 우수근로자들을 매 년 12명씩 선정하여 한국 관광을 시켜주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회사 직원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신사복을 생산(연간 55만장)하는 공장이 되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되었다기 보다는 <미얀스타>에서 1,750명 <슈트스타>에서 1,500명 총 3,250명의 근로자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한다는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직원들에게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의료 혜택을 주고 있다. 공장 설립 초기의 바고 지역은 거주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의료혜택을 볼 수가 없었다. 마침 한국의 성 빈센트 병원에서 해마다 미얀마로 의료봉사활동을 계획하고 있기에 미얀마 정부의 허가 및 진료를 위한 설비등을 <미얀스타>에서 제공해주었다. 덕분에 <미얀스타>, <슈트스타>에서 일하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바고 지역의 거주민들에게도 수준 높은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미얀마에서 사업이 안정되고 수익이 생기면서 어떻게든 미얀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직원과 지역사회를 위해 <미얀스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피고 있고 추가로 초,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장학금 지원까지 하고 있다.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을 했나?

처음 창설시 바고 지역 기능공이 없어 트레이닝을 시키고 청결한 환경에서 좋은 품질이 나올수 있음을 인식시키고자 아침에 출근해서 15분간 생산성및 품질 교육을하고 작업에 들어가며 채용시부터 다나카및 꿩을 씹는것은 사용 금지와 적발되면 품질을 위해 바로 해고 조치와 최고의 품질을 위하여 공장내 음식물 반입 금지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으로 시스템을 만들었다.

 

미얀마에서 사업하며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가?

한번은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시간들을 통해 깊은 신앙심이 생겼다. 카톨릭 신자로 세례 받은 지 40년이 넘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사업할 때만 해도 솔직히 내가 잘해서 내 능력으로 성공했다는 마음이 많았다. 예전에 서울 사무실이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는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하늘의 별들을 보며 혼자서 울기도 했다. 뜻 하지 않은 고난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진심으로 하게 되었는데, 사업초기에는 주일마다 미사에 가기 위해 정장을 입고 만달레이-양곤 장거리 만원버스에 끼어서 미사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버스를 타면 나름 외국인이라고 현지인들이 자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는데 성당에 도착하면 벼룩이 기어올라 간지러웠던 적도 있었다. 공장에 차량이 있었지만 직원들이 업무상 사용해야 하는 터라 사적으로 차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미국 경제제재가 시작이 되고 발주가 없어 공장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신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있을 즈음 방콕 출장 길에 우연히 옆 좌석에 앉은 일본인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신기하게도 신사복 제조공장을 찾고 있는 바이어였던 것이다. 그 일본인은 나에게 샘플을 요청했고, 샘플 체크 후 공장 방문을 하여 연간계약을 해서 위기를 극복했던 적도 있다. 그 때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예전이었다면 내 능력으로 거래 성사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겠지만 신의 인도하심을 열심히 구하던 그 때부터 모든 일에 대한 생각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신앙의 믿음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한번은 직원 중 한 명이 이직을 한다고 사표를 내고 퇴사를 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부모님이 다시 딸을 데리고 와서 이런 회사를 나가면 안된다며 다시 복직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우리회사가 좋은 회사구나 싶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모든 직원들이 회사의 시스템에 만족하고 애사심을 가지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무료진료시 초기암으로 판정받은 샘플실 근로자를 양곤 병원에서 수술 받게하여 지금은 건강하게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

 

미얀마에서 지금까지 사업을 하면서 현재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미얀마 진출시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는 전기공급의 부족이었다, 특히 건기에는 40% 이상을 디젤을 사용하다보니 자금문제가 심각했었으나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할수 있다. 또한 2000년도에 미얀마에 처음 왔을 때만해도 근로자의 업무역량은 꽤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업무역량을 논하기에 앞서 가장 큰 문제는 근로자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숙련 근로자를 포함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미얀마가 6천만명이 되는 인구라고 하지만 인도네시아(2억3천명)에 비하면 적은 인구다. 설상가상 미얀마의 젊은이들의 해외 취업으로 인해 일 손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미얀마는 대략 400만명 이상이 해외 취업 상태이다. 태국의 수도 방콕만 해도 미얀마인이 170만명이라는 보고가 있다. 그러다 보니 미얀마 도시에서는 근로자를 충원하기 위해 지방에서 인력을 수급한다. 미얀마 젊은이들이 해외 취업 할 경우 자기 생활비를 제외하고 몇 백불 이라도 고향에 보낼 수 있지만, 국내 취업 할 경우 자기 생활비를 제외하고 매월 급여를 집으로 송금할 여유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선 단연 기숙사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시급한 사안이라 생각한다. 미얀마 정부에서도 해외 취업을 장려하기 보다는 미얀마 국내 일자리 창출 방법을 찾아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현재 미얀마에 미국의 오더가 완전히 풀린 상태가 아니다. CM(임가공)으로 일부 제조만 하다 보니 여기저기 할 곳 없이 공장 운영이 열악한 상황이다. 미얀마 정부는 개방 이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제조업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건설 등 수익이 많이 발생하는 쪽으로만 집중을 하고 있다. 제조업을 하는 외국업체들이 많은 투자를 하는데 비해 대우는 못 받는 현실이다. 그래서 봉제협회에서 협력하여 미얀마 정부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얀마에도 일 할 곳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근로자 최저 임금제에 대한 기준이 서둘러 확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차일 피일 미루어지고 있다 보니 무분별한 노사분규의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이번 몇몇 업체에서 폭력을 동반한 노사분규를 보면서 놀라기도 했다.

 

신규 업체에 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미국의 규제가 언제 완전히 풀릴지 모르겠지만 풀리게 된다면 대기업 봉제 업체들이 진출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중소 봉제 업체들은 더 어려운 상황이 생기게 될 것이다.

대기업의 진출에 대비하기 위해선…..
첫 째 공장 설비만이 회사의 자산이 아니라 근로자도 자산이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이 봉제 업체의 성공의 길이라고 본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장이 근로자를 대할 때 직원들도 오너를 믿고 따라오게 된다.
둘 째 현지 정부의 룰을 지키면서 운영을 해야 한다. 사실 미얀마 정부의 정책이 외국인에겐 불리한 것들 것 많이 있다고 하지만 미얀마의 벌률을 지켜야 한다. 법률을 준수하면서 사업자로서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미얀마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셋 째 현지의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주위의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투자하는 것보다는 가능하면 현지에 직접 와서 기존 투자 업체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심사숙고후 투자를 결정하는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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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 Author: AD Sho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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